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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 경영전략_유통

선을 넘는다는 것

by Rulemakers 2019. 8. 30.

'선을 넘다'

내 영역을 벗어나 다른 경계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물론 원래 없었던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 <기생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명대사이기도 했고 <선을 넘는 녀석들>이라는 예능 역시 방영중이어서 그런지 최근에 유독 많이 쓰이는 표현인 듯하다. 기본적인 의미는 동일하나 때에 따라서 영화에서처럼 부정적이며 방어적인 의미로도, 예능에서처럼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의미로도 쓰이곤 한다.

 

나는 '선을 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물론 위 두 가지 중 후자의 의미로서이다. 가령 나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한 지인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긴다. 그 분은 어릴 적부터 운동을 했고 체육을 전공하여 특전사로 군복무를 마친 뒤, 현재도 특공대를 직업으로 살고있는 분이다. 평생 운동만 하여 주변에도 온통 무도인(?)들 뿐이고 최근에 시작한 취미 역시도 새로운 운동이라니 이 정도면 말 다했다.

그야말로 운동길만 걸은 인생. 그에 반해 나는 두뇌가 아주 명석하진 않았으나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는 곧잘 했고 덕분에 수시전형으로 대학교에 입학하여 나름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에 취업해 현재의 인생을 살고 있다. 엄마 말 잘 들은 인생.

 

그 분과 나는 도무지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지만 유일한 공통점이 바로 둘 다 선을 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그 분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는 내겐 SF영화와 다를 바 없다. 그 분 역시 나의 이야기가 마찬가지일 터. 우리는 종종 만나 그렇게 각자 갖지 못한 영역을 간접 경험하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곤 한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지혜(sophia)를 사랑하는(philo)'일이라 정의했고, 이는 철학(philosophia)의 어원이 되었다. 피타고라스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늘 지적 호기심과 지혜에 대한 갈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여가시간은 더 짧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고 묻는다면 특히 일을 하는 직장인은 나의 업무와 관련된 것 외에 시간을 내어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물리적인 시간을 떠나 책 한 권,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큰 맘 먹어야 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대이니. 이럴 때야 말로 필요한 것이 선을 넘어 다른 이로부터 삶의 경험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이야기처럼 들리던 것이 어느 새 내가 하고 있는 일, 겪고 있는 어려움, 또는 창의적인 생각과 맞물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길은 만들어지고 우리는 룰메이커가 된다.

 

이처럼 직접 들여다 볼 수 없는 곳이 있다면 애쓰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자. 우리는 그렇게 해왔다. 심해에 갈 수 없기 때문에 그곳을 보기 위해 심해카메라를 개발했고, 사람 몸 속을 볼 방법이 없어 내시경을 개발했다. 또 새가 될 수는 없기에 드론을 이용해 멋진 버드뷰(Bird-view)를 보곤한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가 나누는 각자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들을 이어주는 시냅스와 같은 역할을 할거라 믿는다. 심해카메라가 되고 내시경이, 드론이 될거라 믿는다. 이곳에서만큼은 선을 넘는 것을 주저하지 않길 바란다. 나 역시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내 선을 허물 준비가 되어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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